음악 이야기

[스크랩] 천재 양성소-뻬쩨르 음악원

freeman1 2007. 6. 5. 17:32

 

음악은 연주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로망스'는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가

가장 뛰어나다. 생의 굽이 굽이를 견디고 이겨낸 연륜이 연주에 묻어 있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 희노애락의 감정은 사라지고 그저 담담해진다. 사물을 보아도 망막에는 잡히지 않는 듯한 무념의 순간을 선사받게 된다.

'첼로 로망스'는 혁명가의 삶을 그린 'gadfly(등애)'라는 영화를 위해 작곡한 것인데, 로스트로포비치가 젊은 날 혁명가의 삶을 동시대인으로서 목도했기 때문에 그 비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까닭이 아닌가 싶다.

 

브루흐의 '콜니드라이'는 로스트로포비치의 제자 미샤 마이스키 버젼이 탁월하다. 유태교에서 '신의 날'이라는 뜻의 이 곡은 초저녁 어스름 무렵에 듣기 어울리는 곡이라는 게 나의 느낌이다. '신의 날'에 사람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교회를 찾아 고해성사를 하고 죄를 赦받는다. 이 날 고단한 신도들의 깊은 침묵을 유태인인 마이스키만큼 이해하는 연주자는 없는 까닭일 것이다.

오펜바흐의 '쟈클린의 눈물' 연주도 미샤 버전이 좋다.

그의 첼로음색은 로스트로포비치 처럼 굵지 않지만 그만의 애잔한 음색을 절묘하게 구사한다.

 

오페라 라보엠에서 '뮤제타의 왈츠' 아리아는 안나 네트렙코가 잘 어울린다고 느낀다. 목소리와 미모를 함께 부여받은 안나의 매력이 맘껏 표출된다. "너희 남자들 나를 보면 무슨 생각하는지 나는 알아. 어림도 없지. 그런데

마르첼로 당신은 왜 나를 쳐다보지 않는거지"?  네트렙코의 검은 눈이 관중을 뚫어져라 쳐다보면 관중은 그녀의 카리스마에 압도돼 숨을 죽인다. 갈라 콘서트에서 유리 테미르카노프는 지휘를 하며 안나를 쳐다 보는데  '그 재능이 이뻐 죽겠다는 듯한' 표정이다. 마치 아버지가 사랑스런 딸의 노래에 흡족해하며 지휘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앞서 언급한 네 명의 거장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 출신이라는 점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는 가위 음악에 관한 한 '천재 양성소'라 불릴만 하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1862년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겸 지휘자인 안톤 루빈스타인(Anton Rubinstein)이 초대 원장을 맡으며 최초의 국립고등 음악 교육기관으세워졌다. 그 당시 교수진으로는 비에냐프스키, 루빈스타인, 아우어 등 당시 러시아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치고 있던 유명 교수진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에 차이코프스키가 1회 졸업생으로 1865년 졸업하여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고, 1870년부터 20년간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눈부신 도약을 했는데 이를 이끈 것은 림스키-코르사코프였다.

 

음악원에서 키운 제자들이 신 러시아 학파(작곡)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들 중 특히 리아도프와 글라주노프에 의해 음악원의 교육 프로그램이 정착되었으며 바로 이것에 의해 러시아 음악 신세대를 교육시키는 초석이 되었다. 1944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학교명을 림스키-코르사코프 음악원으로 명명했다.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20세기 들어서도 위대한 작곡가를 많이 배출했는데 스트라빈스키, 미야스코프스키, 프로코피에프, 스타인베르그, 쇼스타코비치, 스비리도프가 그들이다. 특히 러시아 지휘계의 인맥은 모두 이 음악원 출신이었다. 말코, 클리모프에 이어 므라빈스키, 일리아 무신, 예르빗 얀손스와 그의 아들 마리스 얀손스, 그리고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인 유리 테미르카노프와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리 게르기예프, KBS 교향악단을 맡았던 드미트리 키타옌코에 이르기까지 빛나는 업적을 일구었다. 짐발리스트를 필두로 하는 바이올린 계보와 소프로니츠키를 배출한 피아노, 그리고 마린스키 극장을 점령하고 있는 성악진도 발군의 실력을 견주어왔다. 그 외에도 20세기 명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를 비롯, 셀 수 없이 많은 바이올린, 첼로,성악, 피아노의 대가들이 바로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출신이니 음악원이야말로 러시아 음악의 산실이자 천재 양성소라 불릴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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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탄생 60 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1975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렸다. 애제자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가 스승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 

비슈네프스카야에게 헌정된 '블록의 시에 의한 7개의 로망스'도 연주했다. 소프라노 비슈네프스카야, 바이올린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피아노의 바인 베르크. 모두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배출해낸 거장들이었다.

 

요양중이던 쇼스타코비치는 병석에서 제자들의 연주를 라디오로 들으며

흐뭇해 했다.

 

그해 8월 쇼스타코비치가 죽자, 로스트로포비치는 쇼스타코비치 페스티발을 만들어 자신이 직접 연주하고 지휘하며 러시아인들의 애환을 음악으로 표현했던 스승의 곡들을 연주했다. 단 한 차례였다.  

 

'천재 양성소'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교육 방식은 아무래도 독특할 듯 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역시 무언가 달라도 다른 게 많았다. 첫 째가 학제였다.
 

러시아 음악학교들이 유지하고 있는 학제는 몇 십 년에 걸쳐 완성된 것이다.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초기에 학제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학제의 발전은 혁명 전에도 많았지만 혁명 후 1920년대에서 30년대 사이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것이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3단계의 교육 시스템인데 이것은 전문 연주가 양성을 위한 시스템으로서 제일 첫 단계는 6, 7세 어린이들이 입학하는 예비학교로부터 시작된다. 이런 예비학교를 거치면 각 도시의 중앙 음악원에 속해 있는 고등음악학교에 입학한다. 이 학교가 다음 3단계의 음악원으로 넘어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하는 중추 기관이다. 사회적 변화에 관계없이 음악분야 뿐 아니라 모든 교육분야에 적용되어 있는 교육 3단계 시스템이 오늘날까지 러시아의 높은 교육수준을 유지하는 동인이 되고 있다.


현재 러시아에는 무려 5,800여 개에 달하는 `무지칼라야 슈콜라' 라고 불리는 초등음악 교육학교와 260개의 중등음악학교 `우칠리쉬', 그리고 18개의 음악원이 포진하고 있는데 이 나라 음악의 저변이 얼마나 넓은가를 대변해 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 전역에서 모인 최고의 인재들만이 전액 국비장학 혜택을 받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입학이 허가된다. 구소련 시절 음악원 학생들의 수준은 세계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각 지역의 내로라 하는 음악도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문화의 수도에 입성하면 그 자체로 이미 장래가 보장되었던 것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발틱 음악 아카데미 협회와 유럽 음악 무용 협회에 소속되어 있다. 또한 노트르담 음악원(네덜란드), 함부르크 음악원(독일), 계명대학교(한국), 시드니 국립 음악원(호주), 시벨리우스 음악원(핀란드), 보스톤 음악원(미국), 텐진 음악원(중국) 등 세계 15개국 이상의 음악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교류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해마다 세계 각 국의 유명 교수들과 음악가 및 학생들을 초청하여 다채로운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하고 있다.

 

올 가을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이 서울에 온다. 카리스마 넘치는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지휘로 뻬쩨르(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식 발음)를 만날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출처 : 천재 양성소-뻬쩨르 음악원
글쓴이 : art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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