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영국 옥스포드 중산층 가정의 5살 짜리 소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첼로연주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소녀에게 첼로 연주 청취는 처음이었다. 곡이 끝나자 소녀는 “나는 첼로를 연주할거야”라고 선언한다. 자클린 뒤프레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기 키보다 더 큰 첼로를 안고 다니며 런던 첼로 스쿨에서 Cello Daddy라 부르던 W. PREETH 에게서 10년을 배운 후, 세기의 거장들, TORTLIER와 스위스에서 마스터즈 코스를 열고 있던 스페인의 파블로 카잘스 그리고 러시아의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를 사사했다. 제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이다.
1965년 BBC 교향악단의 미국 연주여행에 독주자로 참여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연주자의 길에 들어서면서 자기만의 연주곡을 찾던 그녀가 발굴해 낸 곡이 19세기 영국 작곡가 Edward Elgar의 곡이었다. ‘사랑의 인사’와 첼로 소나타 마단조 ’피날레‘는 단번에 유명해졌으며 죽은 엘가가 자클린에게 고마워해야 할 지경이었다.
엘가의 곡을 들은 시인 P.B. SHELLY는 'To a Skylark(종달새에게)'라는 詩에서
"가르쳐 다오 요정이여 또는 작은 새여
어떤 아름다운 상념들이 너의 것인지
사랑과 와인의 찬미는 내 일찍 들어본 적 없어
고양된 환희가 홍수처럼 들끓고 있으니"라고 찬미했다.
엘가의 '사랑의 인사'는 그만큼 영국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작의 첼로 듀오, 트리플을 즐겨 연주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천부적 재능, 거기에다 타고난 미모까지 갖춘 이 젊고 매력적인 첼리스트는 점점 명성을 더해갔다. 그녀의 연주를 두고 평론가들은 "마음과 가슴과 몸이 악기와 하나를 이루는 연주", "정확하고 충실하며 순수한 영혼의 소리"등으로 격찬했다.
1967년 전도양양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을 만나 결혼했다. 음악계에서는 THE TIMES의 표현처럼 ’20세기판 슈만과 클라라‘에 비견될 만큼 화려한 커플의 만남이었다. 바렌보임은 피아니스트와 런던 필 상임지휘자로서 뒤프레와 여러 차례 공연을 가졌다. 유대인인 남편의 고집에 반발하지 않고 받쳐주며 연주활동을 하는 뒤프레를 두고 당시 영국 언론들은 ’이스라엘의 선인장을 감싸는 영국의 장미‘로 묘사하기도 했다.
뒤프레는 아름다우면서도 열정과 허무가 동시에 담긴듯한 큰 두 눈을 빛내며 꼿꼿한 자세로 첼로를 연주했는데, 희고 길다란 두 손은 신비로우면서도 몽환적인 선율을 실을 짜듯 자아냈다. 그 모습은 마치 숲속의 요정이 하프를 타듯 고혹적이었다. 그녀는 잘 웃지 않는 편이어서 더욱 신비감을 더했다. 실제로 그녀의 앨범 자켓 어디에서도 웃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비극적인 예감 탓이었을까? 박력도 넘쳐 실제 연습 도중 현이 끊어진 적도 어러 번 있었다. 월신의 하강을 보는듯한 황홀감 탓에 연주를 망친 협연자들도 있었다.
당시 다렌보임은 핑커스 주커만, 주빈 메타, 이작 펄만과 함께 유대인 4인방을 이루며 뒤프레와 함께 슈베르트의 'TROUT'등을 Quintet으로 자주 협연하곤 했는데, 이들은 뒤프레와의 공연때는 모두 정면응시를 피한 채 연주를 했다. 뒤프레와 눈이 마주치게 되면 몸이 얼어붙을까봐 두려웠던 까닭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시샘했을까. 운명은 그녀에게 다발성 척수 신경염이라는 희귀병을 안기고 만다. 손이 떨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교수직으로 전환해 잠시 삶을 견뎠으나 이내 그 자리 마저도 보전키 어려울 정도로 병은 악화된다. 그녀 자신 자기 팔이 '납덩이 같다'고 호소할 정도로 신경은 모두 죽어갔다.
한때 그녀 곁에 있던 모든 것들이 하나둘 씩 떠나갔다. 음악도 재능도 사랑도 가족마저도.
남편 바렌보임은 뒤프레의 여동생과 불륜관계를 맺으며 병상의 그녀를 이중으로 괴롭혔다.
1987년 10월 19일,
그녀는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따지고 보면 그녀의 인생 가운데에 3분의 1 기간만이
연주가 허용된 시간이었다. 출중한 재능에 비해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오늘 자클린 뒤프레의 연주로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를 듣다 그녀를 기려본다.
3번 A장조 1악장 Allegro ma non tro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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