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중국의 4대 미인과 3대 악녀

freeman1 2008. 4. 24. 19:03

중국의 4대미인과 3대 악녀가 있다는데....

 

누구인지와 왜 그렇게 불리는지 설명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질문자가 설택한 답변

중국의 4대 미녀는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입니다.

반면에 중국의 3대 악녀는 은나라 달기, 한나라 여태후, 당나라 측천무후 입니다.

단지 청나라 역사학자들이 은나라를 역사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훗날 서태후가 추가되었지만, 지금은 은나라가 전설상의 국가가 아니라 역사상의 국가라는 사실이 밝혀 졌음으로 달기를 빼면 말이 안되지요. 달기는 중국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악녀 중 하나이니까요. 여태후나, 측천무후, 서태후가 자신의 원수와 정적들을 무참하게 죽이거나 고문했던 것에 비해서 달기는 재미로 사람을 죽였다네요.

 다음은 달기에 대한 글입니다.

 

달기는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의 애첩으로 포사,서시,왕소군과 함께 고대중국의 전설적인 미녀입니다.
하지만, 중국 역사에 나오는 미녀 중에 가장 악독하고 잔인한 여성중에 하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사기에는 주왕은 원래 현군이였지만, 그녀를 맞이 한 후에 악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녀의 악행을 보다 못한 한 충신은 자신의 아름다운 딸을 바쳤는데 달기는 그녀를 모함해서 죽이고 그녀를 요리로 만들어 아버지에게 주었다는 등골이 오싹한...
그녀는 왕에게 포락지형을 건의했는 데, 이것은 구리기둥에 기름을 발라 숯불 위에 걸쳐 놓고, 죄인으로 하여금 그 위를 맨발로 걸어가게 하여 발이 미끄러져 불속으로 떨어지면 그대로 타죽게 하는 것으로, 달기는 산 채로 불에 타죽는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다고...
충신 비간이 주왕에게 충언하자 주왕은 그를 잔인하게 죽였는 데, 그것도 달기의 생각...
나중에 은나라가 주나라 무왕에게 망하자 달기는 사로잡혀 오랏줄에 묶인 채 울음을 터뜨리며 형장으로 끌려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배꽃이 봄비를 흠뻑 맞은 것과 같았다고... 그리고 처형할 때 망나니들이 그녀의 미색에 혼이 달아나고 팔이 마비되어 칼을 들어올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형장의 대장이 90살이 된 망나니로 처형하려 했으나 이 늙은 망나니도 달기를 보자 현기증이 나고 눈이 부셔 목표물을 겨냥할 수 없었다고... 결국 그녀의 얼굴을 보자기로 가린 후 처형했다고...

 

다음은 여태후

여태후는 한나라의 초대황제 고조(유방)이 죽자 고조가 사랑했던 애첩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거나 죽였다고 역사에 나오는데... 황제의 여자들을 이토록 혹독하게 대한 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일로 그렇기 때문에 여태후를 악녀라고 말하고 있지요.

여태후는 척부인을 몹시 미워했는데 이는 척부인이 고조의 사랑을 독차지 했을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옹립하려고 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장자방을 비롯한 신하들의 반대로 실패한 후에 고조는 여태후가 척부인의 아들을 해칠 수 없도록 믿을 수 있는 신하에게 그를 부탁하지만,  여태후는 그를 감금한 후에 마침내 척부인의 아들을 독살합니다.

 이후에 척부인을 아주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죽이지도 않고...

자신의 아들인 혜제에 척부인을 보여주자 혜제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인생을 술에 빠져서

살다가 죽었다는...

 혜제가 술에 빠져 정치를 등한 시 하자 여태후는 자신의 반대 세력을 쫓아 내거나 죽인 후에 자신의 친척들을 대거 기용해서 권력을 장악합니다.

 혜제가 죽자 이후 여러 황제를 옹립했는데, 이런 일화가 있읍니다.  황제를 자기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 황제의 어머니를 죽였는데, 이 사실을 황제가 알자 그 황제마저 죽였다는...

 이처럼 여러 황제를 마음대로 내세웠던 여태후는 자신의 친척들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고 이에 고조의 신하들은 여씨 세력을 숙청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읍니다.

마침내 여태후가 죽자 고조의 신하들은 여씨들에 선전포고 했고 여씨들은 권력을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고조의 신하들은 이들을 끝내 숙청해서 여태후의 친척들은 대다수가 숙청되었지요. 그 당시 여씨들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태후가 죽자 여씨들은 분열하여 결국 멸망당하고 말았지요. 이어서 황제에 오른 문제는 여씨의 세력을 모두 숙청함으로 여씨들은 멸문을 당하고 맙니다.

 

측천무후는 자신과 대립했던 친자식을 죽인 것으로 악명이 더 높은데, 여태후가 자신을 반대했던 혜제를 죽이지 않은 것에 비하면 훨씬 더 악독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측천무후 역시 고종 시대 자신의 경쟁 상대였던 후궁들을 무참히 죽인 것으로 악명 높은데, 자신을 궁궐에 입궁시킨 황후마저 무참히 죽였다고...

마음에 드는 신하들하고 바람 핀 것으로도 악명 높지만, 시대가 변하다 보니 지금와서 그것을 악한 행동이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네요.

여태후와 비교해서 여태후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고 여태후가 고조와 혜제가 죽은 후에 권력을 잡은 것에 비해서 측천무후는 남편인 고종의 생존시 권력을 송두리째 빼았었다는 점도 당시로 보면 악처인 셈이지요.

남편의 권력을 빼았은 아내, 자식을 죽인 어머니...

권력을 위해서라면 인륜조차...

반면에 여태후는 아들인 혜제의 권력을 빼았지 않았는데...

이런 일화가 있읍니다.

여태후는 벽양후 심이기를 총애했는데(아마도 불륜관계인듯) 혜제가 노하여 벽양후를 죽이려 하자 부끄러워 하여 벽양후를 변호하지 않았다고...

비록 당시에도 권력을 휘둘렀지만 혜제가 여태후가 총애하는 신하를 옥에 가둔 것으로 보아서 혜제가 허수아비 황제는 아니였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읍니다.

 이에 반해서 측천무후는 악처이자 자식을 죽인 어머니이니 여태후보다 훨씬 더 악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여태후는 비록 자신의 정적들은 무참히 죽였지만 반대로 자신이나 고조에게 충성을 바쳤던 신하들은 우대하였는데, 고조의 충신들을 숙청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어 훗날 여씨들이 멸문당했으니 여태후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잘 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여태후의 특이한 점은 고조의 후궁들 중 고조의 사랑을 받지 못한 후궁들을 우대했다는 점인데...  그들을 불쌍히 여겼을 뿐 아니라 그들을 자주 만나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고 합니다.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점에서 어느 정도의 인정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3대 악녀는 이쯤에서...

 

중국의 4대 미녀란 당나라 시대에 학자들이 경국지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이들 중 특별히 4명이 뛰어나다 해서 생긴 개념인데, 고대의 전설적인 미녀 서시, 왕소군, 초선에 양귀비를 추가한 것이라고도 불 수 있겠지요.

 

경국지색이란 말은 나라를 뒤집어엎을 만한 절세미인을 뜻하는 말로 하나라 매희, 은나라 달기, 주나라 포사, 월나라 서시, 정나라 하희, 한나라 왕소군, 초선, 당나라 양귀비를 경국지색이라고...
이중에서도 최고의 미인을 뽑으라면 단연 서시...
서시는 춘추 시대 월왕 윤상의 시대에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는 데, 왕 윤상이 죽은 기원전 496년 전에 태어났다는 것 이외에 언제 태어났는 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그녀가 오왕 부차에게 바쳐진 것이 483년경이니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겠지요.
당시 역사적 상황은 오왕 합려가 월왕 구천과 싸우다 화살에 맞은 것이 원인이 되어 죽었기 때문에 오왕 합려의 아들 부차는 명신 오자서의 도움으로 왕이 된후에 월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이겼고 구천은 신하의 예로 오왕을 섬길 것을 맹세하는 굴육적인 외교로 간신히 월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읍니다.
천하의 명장 오자서가 있는 한 오나라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명신 범려는 서시를 오나라에 보내어 오자서와 부차를 이간시키려고 했던 것으로 추측...
서시를 역사상 최초의 미녀 스파이로 보는 역사학자들이 많습니다.
오나라의 명신 오자서가 그녀가 오나라에 온 얼마후에 죽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부차가 미녀에 빠져서 나라를 돌보지 않고 토목공사에 열을 올린 것도 그녀의 계략이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천하의 명장 오자서가 죽자 월왕 구천은 오나라를 공격하려고 했으나 명신 범려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구천을 만류했다고 합니다.
서시가 오나라에 온지 10년만인 473년 월왕 구천은 드디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부차는 자살...
서시가 이 때 자살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그것은 전설일 뿐 그녀가 월나라 명신 ?려와 제나라에 갔다는 기록이 정설에 가깝습니다.
더욱이 시성 이태백의 시에 서시가 다시는 월나라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녀의 자살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역사적 자료라고...
경국지색들은 대부분 자살설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자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네요.
양귀비는 강요에 의해서 자살했고 삼국지에 자살했다고 나오는 초선은 실제로 여포가 죽을 때까지 여포의 사랑을 받았던 여인이라고 사서에 나옵니다.
사서에는 여포가 동탁을 죽이고 난 후 동탁의 잔당이 다시 집권하자, 여포의 친구가 초선을 숨겨 주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서 초선은 동탁이 죽은 후에 여포의 품으로 간 것이 확실하다고 여겨집니다.
포사역시 자살설이 있지만 견융이 그녀를 강제로 데려 갔다는 기록이 있고 그것이 사실이겠지요.
당시에는 여성이 정절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비극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그녀를 좋게 말하기 위해서 자살했다고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무튼 서시는 제나라에 가서도 천하 제일의 미녀라는 명성을 얻었읍니다.
제나라 사람들은 범려의 아내가 천하 제일의 미녀라 칭송했는 데, 그녀가 바로 서시였다는군요.
이 때는 구천이 죽은 465년 이후로 그녀의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추측됩니다.
옛말에 여자가 아무리 예뻐도 30이 넘으면 사랑을 잃는다는 말이 있는 데, 서시는 40대에도 최고의 미녀라는 명성을 얻었다고 하니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녀답군요.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 시대의 미녀인데...

아주 이상할 정도로 그녀는 빼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부름을 받지 못했는데,

여기에 대해선 수많은 추측들이 있읍니다.

그 중 하나가 처음부터 그녀가 원제의 총애를 받지 못하게 황후 세력이 손을 썼다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당시 궁녀들의 얼굴을 그려 황제에게 바쳤던 화공 모연수가

왕소군이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아서 그녀의 얼굴을 추하게 그렸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일개 화공이 그런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많은 역사학자들의 추측입니다.

아마도 황후나 특정 권력층의 사주를 받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만약 그녀가 원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가 되서 아들을 낳는다면 권력의 구도가 바뀌기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한 특정 세력이 원제가 그녀를 보지 못하게 방해했을 가능성이 높지요.

아무튼 왕소군은 원제가 그녀를 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궁궐 생활을 하다가 흉노의 선우에게 간택되어 선우의 왕비가 됩니다.

 당시 한나라는 흉노와 화친하기 위해서 한나라의 공주를 흉노의 선우(왕)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는데, 황제가 베푸는 연회에서 선우는 공주가 아닌 황제의 궁녀 중에서 아내를 맞이 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공주가 아니라서 잘?다고  생각했겠지요.

 한나라는 궁녀들 중 빼어난 미녀들을 골라내어 선우가 선택할 수 없도록 만들었지만

이 중에 왕소군은 빠져 버렸읍니다.

 원제는 흉노의 선우에게 연회를 베풀며 연회에 나온 궁녀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 했고 흉노의 선우는 왕소군을 보자 그녀를 달라고 청하였지요.

 원제는 왕소군의 빼어난 미모를 보고 뭔가 잘못되엇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읍니다.

 결국 왕소군은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갈 수 밖에 없엇지요.

앞서 언급했 듯이 화공 모연수는 이 일(왕소군을 추하게 그린 일)에 책임을 지고 처벌받았지만 일개 화공이 그런 일을 했다기 보다는 어떤 특정 세력이 왕소군이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하게 방해한 일이라고 추측되어 집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당시 권력을 잡고 있었던 신하가 웬제가 미색에 빠져 나라를 망친느 것을 막기 위해서 그랬다는 설, 흉노의 선우를 미색으로 현혹하여 흉노의 국력을 약화시킨 후에 흉노를 공격하려고 했다는 설, 일종의 스파이로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보냈다는 설, 평화사절로써 그녀를 시집보냈다는 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제가 보기에 가장 유력한 설은 원제의 황후나 황후의 세력이 왕소군이 원제의 총애를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보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한 것 같습니다.

 왕소군이 흉노로 떠난 후에 원제는 병으로 죽고 수십년 후에 황후의 조카 왕망이 신나라를 건국했으니 왕소군이 흉노로 시집간  대한 의혹은 없을수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초선의 미모에 달도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구나(폐월)."
초선은 삼국지 시대인 동한 말년 왕윤의 가기였다고 합니다...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로 대단한 미녀라는 경성지모(傾城之貌)는 그녀에게서부터 나온 고사...
소설 삼국지에 나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초선은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함께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녀로 이른바 중국 4대 미녀로 그 아름다움을 칭송받아 왔읍니다...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웠는가에 대해서 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서시에 비해서 결코 못하지 않다.'
초선에 대해서 가장 자세히 나온 책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인데...
삼국지연의는 역사책이 아니고 소설이니 역사적 기록이라고 보기는 힘들거 같습니다...
초선은 동탁이 죽은 후에 여포의 첩이 된 것으로 알려져있는 데,
문제는 여포가 죽은 후에 그녀가 어떻게 되었느냐이지요...
여기에 대해서 진수의 삼국지에는 대단히 놀라운 기록이 있는 데...
조조가 여포를 포위한 후 총공세를 하기전에 유비, 관우와 작전을 의논했을 때,
관우는 초선을 자기한테 줄 것을 조조에게 청했고 조조가 이를 허락했다...
하지만, 조조는 약속을 어기고 초선을 허창으로 데리고 갔고 관우는 이를 심히 불쾌하게 생각했다...
이것이 초선에 대한 마지막 역사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후에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 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설들이 있읍니다...
첫째, 관우가 조조에 몸을 의탁했을 때 조조는 초선을 그에게 주어 자신이 예전에 지키지 않은 약속에 대해서 사죄하려고 했다고...
4 년 전 부터 꿈에 그리던 여인을 만난 관우는 초선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반했지만, 그녀를 받아들이는 것은 조조에 큰 신세를 지는 것이므로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었읍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자결을 명했다고...
둘째, 여포가 죽은 후에 조조가 약속을 어기자 화가난 장비가 초선을 훔쳐서 관우에게 주었다는...
관우는 그녀에 첫 눈에 반했지만, 여포가 그녀에게 빠져 망했듯이(사서에 의하면 여포의 군사 진궁이 조조를 격파할 묘책을 세웠지만 초선이 여포의 출정을 반대하자 공격을 포기했다) 자신도 그녀에 빠져 유비에 대한 충성 맹세가 흔들릴까봐 그녀에게 자결을 명령했다고...
셋째, 여포가 죽자 여포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조조가 여포의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포를 죽인 것은 초선을 탐했기 때문이라는) 자결로써 생애를 마쳤다...
한가지 공통점은 그녀가 자결했다는...
오랫동안 관우와 초선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선은 여포가 죽은 직후에 죽었을 것이라는...
왜냐하면, 초선은 서시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녀였기 때문에...
그녀가 살아있다면...
역사에 나오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그녀의 이름이 여포가 죽은 후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였을 거라는 역사적인 추측을...

 양귀비는 당현종의 며느리로 당현종은 아들의 여인을 빼았은 부도덕한 황제이지요.

아직도 이 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고 여기에 대해서 당나라 이씨가 흉노족의 후손인 선비족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읍니다.

 설령 선비족이 아니라고 해도 선비족과 섞여 살다가 보니 이들의 이상한 풍슴이 중국에

정착했던 것은 아닌지...

사기에 의하면 흉노족은 아버지가 죽으면 아버지의 첩을 자식이 물려 받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주 이상한 풍습이엿지요.

게다가 당태종은 자신의 형수를 아내로 맞이한 적이 있고 당고종은 당태종의 여인이였단

측천무후를 총애했으니...

당나라는 정말 당시에 형수나 계모 심지어 며느리와 결혼하는 풍습이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양귀비가 황후가 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당태종의 며느리였었기 때문에 신하들의 반대에 부딛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양귀비는 당현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안녹산의 등장으로 삼각관계가 형성이 되지요.

안녹산은 현종의 절대 신임을 받아 절도사가 되었는데,  어찌나 신임이 두터웠는지 당태종은 안녹산을 아들처럼 총애했다고 합니다.

양귀비는 안녹산을 양자로 입양했는데, 역사학자들은 이를 불륜을 감추기 위한 술책으로 보고 있다고...

당시 항간에는 안녹산와 양귀비가 불륜 관계에 있다는 소문이 파다 했지만 현종은 이를 듣지 못했는지 아무 문제 삼지 않았읍니다.

마침내 안녹산이 난을 일으키자 안녹산과 양귀비의 각별했던 관계에 대한 소문이 급속도로 확산이 되었고 승상 양국충(양귀비의 6촌 오빠)의 실정과 패전으로 현종을 호위하던 병사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양귀비의 자결을 요구했고 결국 양귀비는 자결로 생을 마감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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