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lazquez, Diego Infanta Margarita c. 1656 Oil 105 x 88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벨라스케스의 왕녀 마가레타의 초상
17세기의 이름 높은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끔찍이도 사랑한 모리스 라벨은 흥겨운 관현악곡 '볼레로'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작곡가다. 그는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지만 미술에도 역시 소양이 깊어 시적이고도 회화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그중 하나다. 라벨은 천재답게 루브르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그림 '왕녀 마가레타의 초상'을 보고 감동한 나머지 24세 때 이 피아노곡을 썼다.
지나치게 깔끔하고 까다로운 편집증적 성격을 지녔던 라벨은 62세로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았으며 독신으로 살았지만 흠모의 대상이 있었던 베토벤이나 브람스와는 달리 특별히 내세울 만한 연인도 없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는 아마도 젊은 시절의 라벨에게 있어 그림 속의 왕녀가 풍기는 고귀한 기품과 아름다움이 평생의 연애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라벨은 자신이 쓴 피아노곡들을 상당수 오케스트라곡으로 편곡하여 원곡보다 더 사랑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1899년에 피아노곡으로 작곡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그 중의 하나로서, 그 우아하고 기품있는 선율미는 라벨의 음악이라고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매력에 넘쳐 있다. 이 피아노곡은 원래 라벨이 에드몽 드 폴리냑(Edmondde Pollignac) 공작 부인을 위해서 작곡되어 그녀에게 헌정한 곡이다.
전체 연주시간 약6분 정도의 짤막한 소품에 불과하지만, 원곡의 아름다움과 기품은 각별하다. 이 피아노곡은 1902년 4월에 국민음악협의회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10년에 라벨 스스로가 편곡한 관현악용 파반느는 12월 25일 성탄절에 초연되어 피아노곡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파반느란 것은 느린 2박자의 춤곡으로, 16세기에 꽃피었다가 18세기 이후에 거의 잊혔다가 라벨이 <왕녀 마가레타의 초상>을 음악으로 그리면서 되 살아났다. 이 곡은 멜랑콜리하지 않게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데다 섬세한 화음이 인상적이다.
1928년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포즈를 취한 라벨. 캐나다 출신 가수 에바 고티에가 라벨과 함께 앉아있다. 맨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은 조지 거슈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