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곡은 시원하다기보다 으시시한 음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꼭 여름철에 TV에서 납량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처럼 클래식 음악에도 요괴들이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음악이 있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음악이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의 하룻밤’이라는 곡이다.
유럽과 러시아에서는 6월 24일이 우리 나라의 하지에 해당하는 ‘성 요한제’로 러시아에서는 그날 밤 산에서 요괴들이 내려와 온갖 장난을 한다고 한다.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의 하룻밤’은 그것을 묘사한 음악이다. 악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지하 정령들의 소동. 먼저 어둠의 혼령이 나타나고 이어 체르노보크(암흑의 신)가 등장한다. 혼령들이 체르노보크에 대한 찬미와 어둠의 제전. 그리고 성대한 지옥의 향연, 그 시끄러운 잔치가 한창일 때 들려 오는 마을 교회의 종소리. 어둠의 혼령과 체르노보크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면 어느새 동이 튼다.”
월트 디즈니에서 클래식 음악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영화 “환타지아”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민둥산의 하룻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보면 더욱 실감나게 이 곡을 감상할 수 있다.
무소르그스키의 교향시 <민둥산의 하룻밤>은 원래 그가 미완성으로 남긴 오페라 <소로친스크의 시장>에 사용될 예정이었던 <젊은이의 꿈>이라는 음악을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작곡자 사후에 관현악으로 완성한 것이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민둥산의 하룻밤>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무소르그스키 사후에 1881년부터 1883년까지 관현악으로 편곡한 것이며, 1886년 10월 27일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교향악 연주회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오페라 <소로친스크의 시장> 속에서 이 곡은 3막 1장과 2장 사이에 삽입되어 있는데, 오페라 줄거리와는 상관없이 꿈속에 나타난 악마의 향연을 묘사하고 있다. <젊은이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되어있던 이 곡이 나중에 림스키 코르사코프에 의해 편곡되면서 <민둥산의 하룻밤>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것은 본래 이 작품이 무소르그스키가 1867년에 완성한 관현악곡 <민둥산의 성 요한 축일 전야>에서 유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남부 키예프에 있는 트라고라프라는 산 위에서는 매년 6월 24일에 성 요한의 제사를 지내는데, 전설에 의하면 그 전날 밤에 악마들의 잔치가 벌어진다고 한다. 바로 이런 전설에 따라 성 요한 축일 전야의 모습을 묘사한 곡이 바로 <민둥산의 성 요한 축일 전야>이다. 무소르크스키 자신은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밤의 영혼들이 지하에서 아우성치며 어둠의 영혼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사탄이 나타나 악마를 숭배하는 의식이 벌어져 절정에 달할 무렵 멀리서 작은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고 혼령들이 사라지면서 아침 하늘이 밝아온다.”
무소르그스키는 <민둥산의 축일 전야>를 발라키레프에게 헌정할 생각으로 작곡했으나 발라키레프는 이 작품을 날카롭게 비판했고 결국 얼마 동안 이 작품은 출판되지도 못한 채 성 페테르부르크의 공공도서관에 그대로 소장되어 있었다가 1968년 모스크바의 출판사인 ‘무지카’를 통해 출판되었다. 그래서 현재 무소르그스키의 이 작품은 무소르그스키가 직접 오케스트레이션을 붙인 원전판인 <민둥산의 축일 전야>와 림스키 코르사코프에 의해 편곡된 <민둥산의 하룻밤>의 두 가지 판본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러나 대개는 거칠고 과격한 원전판보다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에 의해 잘 다듬어진 <민둥산의 하룻밤>이 더욱 자주 연주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