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스크랩] 앙리 마티스의 댄스

freeman1 2012. 9. 9. 13:46

◇ 앙리 마티스의 `댄스 2`  
   (1910년 작,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북 프랑스의 르 카토에서 곡물상을 하는 부친과 아마추어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티스는 파리에서 미술 수업을 받았다. 에꼴 데 보자르에 입학하게 되면서 
    그는 푸생과 샤르댕 등의 작품을 모사하는 인습적 보수적 경향의 그림을 따라 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접하게 된 마티스는 다양한 제작의 
    세계를 접하며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당시 마티스의 작품 세계는 이미 분명한 개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보여진 
    밝은 색조와 분명한 윤곽, 단순화된 형태감 등은 후에 마티스 회화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소가 되는 것들이었다.
    마티스는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요소들을 가미하면서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완성시켜 나갔다. 이 같은 장식성은 이슬람교와 비잔틴 예술의 영향으로 마티스가 
    비서구적인 예술 형식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에서 기인한다. 1910년 뮌헨의 
    이슬라믹 대전시회를 보러 갔던 마티스는 그해 가을 남부 스페인의 유적을 탐사했으며, 
    이듬해에는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에서 이콘화와 벽화를 공부하기도 했다. 
    또한 이 같은 그의 관심은 1912년부터 1913년 겨울까지 모로코 행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모로코에서 마티스는 화가로서 마치 천국을 부여받은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강렬한 태양과 원색의 꽃들, 낯선 이국의 빛깔과 문화에 마티스는 감동했다.
    소재 면에서 그는 인물의 묘사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삶에 대한 감정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인물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는 선과 색채가 살아 숨쉬는 
    화면의 역동성을 낳았다.
    '색체의 해방'을 슬로건으로 20세기 초에 일어난 미술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야수파. 
    야수파 화가들은 캔버스를 자신들의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공간으로 충분히 활용하였다.
    그들은 회화의 질서를 위한 표현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주관적인 면에만 
    치우치는 것에 문제점을 드러냈고, 통일된 강령을 갖고 체계적으로 운동을 펼쳐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불과 2, 3년 정도의 수명만 유지했을 뿐, 그 후 야수파 화가들은 입체파 등 
    다른 운동에 가담하며 활동하게 된다.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는 고유색을 부정하는 주관적인 색체와 거친 붓놀림 등이 작품의 
    큰 특징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기본적으로 사물 자체에 대한 관찰과 발견, 느낌과 
    경험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마티스는 예술이 단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만을 위한 예술로 나아가길 추구했다. 
    이를 위해 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의 색채를 부정했으며, 전통적인 방법에서 일탈한 
    매우 혁명적인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방법적인 측면에서의 수많은 시도 속에서 마티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자유롭고 강렬한 색채 표현이다. 
    마티스는 다양한 양식들을 실험하였지만 1905년경 남불 풍경의 명료한 빛과 밝은 색채에 
    영향을 받고 자기 나름대로의 양식을 발견하였다. 색채는 찬란하였으며, 구도는 고도로 
    조직되어 있었다. 마티스의 표현색이 사실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강렬한 그 색채만으로도 
    당시 화단에는 큰 이슈가 되었다. 마티스는 빛과 그림자의 표현 이전에 색채를 가장 
    중요시 여겼다. 색채를 이용하는 것만으로 그는 공간과 빛을 충분히 암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화가였다. 
    이처럼 마티스의 작품에서 색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 마티스는 색채에 관해 
    “내가 녹색을 칠할 때 그것은 하늘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이다. 마티스에게 있어서 
    색채는 보여지는 그대로가 아닌 자신의 경험과 감정의 표현이었고, 이는 20세기 초의 미술운동인 
    야수파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했다.
    마티스가 지닌 색채의 자유로움은 이미 고갱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이국적이고 상상의 
    색으로 현실적인 색채를 벗어나면서 색채의 자유로움을 제시한 고갱. 또한 내면 세계를 
    그리기 위해 주관적인 색채를 사용했던 화가 고흐. 이들의 영향으로 야수파는 현실이나 
    형태로부터 색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비현실적이고 주관적인 색채 표현은 후에 
    독일의 표현주의 미술에 영향을 주며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노년에 접어든 마티스는 몸을 거동할 수 없게 되면서 새로운 기법으로 제작된 색종이 그림을 
    그리게 된다. 관절염 관절염으로 인해 손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그는 병상에 누워 
    종이 자르기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71세에 내장 장애로 수술을 거듭하면서 거동을 
    못하게 된 후 8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그의 색종이 그림은 계속되었다. 
    마티스의 색종이 그림은 작품 세계의 완결이라고 표현될 만큼 평면적이고 자유로운 색채가 
    강조되었다. 그의 종이 자르기는 마치 조각가가 직접적으로 새기는 방식과도 같았다. 
    그는 색채도 혼합하여 마치 가위를 연필처럼 사용해서 색종이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 효과는 방법의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강하고 직접적이었다.
    마티스는 색종이 그림을 통해 간결하고 명확한, 그리고 대범한 구획 속에서 고전적이라 할 
    만큼의 질서감과 절도감을 보여준다. 어쩌면 선과 리듬, 색채와 공간의 자율적인 세계 속에서 
    마티스는 우리에게 존재의 의미를 확증시켜 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댄스> 1910 캔버스 유채 258×390cm 레닌그라드 에르미타쥬 미술관 소장
    마티스의 작품 속에서 색채는 춤을 춘다. 마치 무한한 생명을 갈구하는 듯 힘찬 몸짓으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이 그림은 모스크바에 있는 저택의 계단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활기 있는 생명감이 넘치는 대작이다.
    출처 : 아름다운동산
    글쓴이 : 김명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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