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a Marseillaise -Mireille Mathieu
La Marseillaise - Mil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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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7월 14일의 역사을 뒤지다 나의 눈을 끄는 오늘의 역사가 있다. 늘 그렇듯이 따식이의 글들의 모티브는 역사다. 프랑스 혁명(1789년 7월 14일~1794년 7월 27일)이 바로 오늘이였다. 그로인해 필받은 오늘 따식이의 음악에세이는 바로 프랑스혁명을 노래한 혁명가이자 프랑스 국가인 La Marseillaise이 되겠다.
벌써부터 또 역사강의나 철학강의가 들리겟구나라고 한숨 짓는 독자들에게 우리가 그동안 교과서로 배우며, 인테넷의 발전으로 쉽게 프랑스 혁명에 대해 공부 할수 있는 이유로 따식이의 역사강의는 오늘은 쉬고자한다.
다만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저변에 깔린 프랑스 국민들의 일반 스트라이크나 파업 및 시위에 대한 인식들의 이야기을 해가면서 한국의 시위문화에 대한 국민적 인식전환을 꿈꾸는 이야기로 정리하고자 한다.
▲ 프랑스의 낭만주의 조각가 Fran?ois Rud? (1784~1855)의 작품 'La Marseillaise' 우표 프랑스 대혁명을 기념하며 개선문의 부조로도 조각되어 있다.
- La Marseillaise -
Allons enfants de la Patrie
나아가자, 조국의 아들 딸들이여,
Le jour de gloire est arriv?.
영광의 날은 왔도다!
Contre nous, de la tyrannie,
폭군에 결연히 맞서서
L'?andard sanglant est lev?,
피 묻은 전쟁의 깃발을 올려라,
l'?andard sanglant est lev?,
피 묻은 전쟁의 깃발을 올려라!
Entendez-vous, dans la compagnes.
우리 강토에 울려퍼지는
Mugir ces farouches soldats
끔찍한 적군의 함성을 들으라
Ils viennent jusque dans nos bras
적은 우리의 아내와 사랑하는 이의
Egorger vos fils, vos compagnes.
목을 조르려 다가오고 있도다!
(Refrain = 후렴구)
Aux armes citoyens!
무기를 잡으라, 시민들이여!
Formez vos bataillons,
그대 부대의 앞장을 서라!
Marchons, marchons!
진격하자, 진격하자!
Qu'un sang impur
우리 조국의 목마른 밭이랑에
Abreuve nos sillons.
적들의 더러운 피가 넘쳐흐르도록!
▲ 자유의 나무 아래에서 ‘공화국’을 상징하는 여성이 헌법을 들고 있다. 이 여성의 모습은 샤토비유 축제에서 ‘자유’를 상징했던 여성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프랑스라는 한나라의 국가치곤 가사한번 상당희 과격스럽다. 그럴수박에 없는게 프랑스 혁명을 노래한 혁명가이니 과격하기 이를데 없을 것이다.
프랑스의 혁명의 정서가 깔려져 있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요세 한국의 촛불시국과 맞물려 시위라는 자체는 무엇인가을 고민해본다.
프랑스에서는 초,중,고의 과정에서 노동법, 노사협의, 노사협상의 기술등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와 시위 관련법조차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란 것을 아는 분들은 몇이나 될까?
그만큼 그들에게는 나도 노동자고 너도 노동자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그로인해 파업이나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들의 투쟁에 대해 역동적인 연대를 표현한다. 유명한 실예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3년 동안 버스 회사가 500번의 파업을 한 도시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관점으로 보면 당연히 이상하고 주민들이 불편했을텐데 그 마을 주민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의 권리를 주장해야 할 때 누가 나의 말을 들어주겠습니까?" 라구요. 우리 나라 처럼 파업이나 시위가 일어나면 교통이 불편하다, 피해액이 얼마다 라는 식의 편파적인 언론보도와 그에 따라 격분하는 사람들. 그것이 그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편파적인 언론대신에 노조의 상황과 요구안, 그 동안의 진행과정들을 생각해보며 또한 언론은 공평하게 보도하고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는가 라는 질문 앞에 우리는 생각해 볼 문제다.
그로인해 우리는 촛불시국 이전에 이러한 편파보도(조중동과 수구 보수 신문)에 길들여진 우리는 우리는 시위나 파업등이 일어나면 그러한 본질적 사태의 이유을 이해하기전에 피상적으로 일어나는 폭력만을 부각시키며 본질을 제외한 현상만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때로는 시위 흔희 데모라는 자체에 및도 끝도없는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번 촛불 시국에 의해 이러한 부분들은 아주 크게 우리의 문제로 인식되어 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로 인해 이러한 시각들이 보다더 확대되고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초,중,고 교과서에도 노동법, 노사협의, 노사협상의 기술등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와 시위 관련법조차 가르치며 시민불복종 저항권의 건강한 사회적 모습을 가르 칠 수 있는 그러한 사회의 인식과 교육으로 확대조차 꿈꾸고 있다.
국민 인식의 대변화을 위하여.....
오늘의 역사 프랑스 혁명을 뒤돌아본결과 이제 우리는 촛불로 인해 역사의 이름으로 한발짝 더 전진하는 인식의 대변화라는 성과물은 있지 않는가?
이 인식의 전환을 자양분으로 미래의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는 성숙한 시민정신을 만들어 같으면 하는 따식이만의 희망을 필력하며 이만 줄일까한다.
▲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 , 1942)중 La Marseillaise
카사블랑카에서도 이곡은 차용되어 널리 알려진 곡이다. 스토리 탓인지 몰라도 파리가 나치스에게 점령된 1940년. 프랑스령 모로코의 항구 카사블랑카에 정치망명자와 반 나치스 투사, 스파이들이 모여든 배경탓에 이곡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에 어울려 차용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1792년 4월 24일 밤 혁명군 공병대 장교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이 작곡했다.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한 후 스트라스부르(루제 드 릴도 이곳에 주둔했음) 시장 P. F. 디트리히가 프랑스군이 부를 행진곡이 필요하다고 요청하자 루제 드 릴이 작곡한 곡이 바로 〈라 마르세예즈〉이다. 원래 제목은 〈라인군의 군가 Chant de guerre de l'arm?e du Rhin〉였는데, 마르세유 출신 의용군들이 즐겨 불렀기 때문에 〈라 마르세예즈〉로 통하게 되었다.
혈기가 넘치고 위풍당당한 이 노래는 강렬한 효과를 발휘하여 혁명 기념행사에서 항상 불리게 되었다. 1795년 7월 14일 국민의회는 이 노래를 프랑스 국가로 제정했으나 나폴레옹 제정 당시와 루이 18세의 제2왕정 복고 당시(1815)에는 혁명과 연관되었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1830년 7월 혁명 후에 다시 공인되지만 나폴레옹 3세에 의해 다시 금지되고 1879년에야 다시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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