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속에는 계절도 있고, 사랑도 있고, 죽음도 있다. 때문에 이런 곡을 오선지에 담아내는 작곡가의
사랑 감정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음악만큼 멋진 사랑을 한 작곡가도 많다. 하지만 하이든은
그렇지가 않았다. 소크라테스처럼 가장 심한 악처를 만난 보기 드문 경우이다.
하이든은 두 자매에게 음악을 가르쳤는데 그 중 동생인 테레제를 좋아했다.
그런데 프로포즈 직전에 그녀는 수도원으로 들어가버리고, 낙담한 하이든은 언니 마리아와
아무 생각없이 결혼해버렸다.
하이든보다 3년 연상인 그녀는 얼굴도 못생기고 다혈질인데다가 집안 살림살이는 내팽겨치는
그런 여자였다.
하이든이 열심히 쓴 악보를 포장지로 쓰는가 하면, 머리카락 마는 종이로 구겨버리기까지 했다.
모차르트
도 하이든처럼 꿩 대신 닭을 선택한 경우.
독일에서 음악활동을 하며 베버('마탄의 사수' 작곡가)의 조카 딸, 알로이쟈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는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렸다.
커다란 충격에 빠진 모차르트를 위로해주고 도와주었던 여자는 알로이쟈의 동생, 콘스탄체.
흔히 철이 없고 낭비벽이 심한 악처라고 평가하지만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모차르트와
콘스탄체의 사랑이 있었기에 수많은 걸작들이 나올 수 있었다. 추운 겨운날, 모차르트 집에
땔감이 없어 콘스탄체를 꼭 끌어안고 밤새 춤을 추며 추위를 견뎠다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도
있다.
리스트. 음악가 중에서 소문난 바람둥이는 피아노의 거장, 당시 리스트의 열기는 전유럽에서 대단했다.
마치 요즘의 록그룹처럼. 빼어난 용모와 화려한 실력으로 뭇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는데
연주 전에는 항상 피아노 위에다 장갑을 벗어두었다가 끝나면 장갑을 그냥 남겨놓은 채 퇴장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면 그 장갑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귀부인들이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화려한 여성 편력을 가졌던 리스트이지만 정식 결혼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쇼팽은 리스트와 친하게 지내며 그를 통하여 시가를 물고 남장을 하고 다닌 여류 문학가, 조르즈 상드를
알게 되고 음악사에 길이 남을 애절한 사랑을 꽃피우게 된다.
어느날 리스트가 무대의 불을 끈 채 캄캄한 속에서 연주를 하였다.
어둠 속에서도 실수 한 번 없이 완벽한 연주를 보여주었는데 음악이 끝날 무렵 무대 뒷편에서
조르즈 상드가 촛불을 받쳐들고 무대 앞으로 걸어왔다.
관객들은 '역시 리스트야'하면서 감탄했었는데 밝은 상태에서 확인한 연주자는 리스트가 아니라
쇼팽이 아닌가.
이 연주 이후 쇼팽은 파리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상드와의 사랑도 깊어지게 되었다.
이런 쇼팽에게도 첫사랑은 있었다.
콘스타티아와의 열렬한 사랑을 담은 곡이 피아노 협주곡 두 곡이다.
바그너
역시 선배인 리스트와 친하게 지냈는데 나중엔 장인과 사위의 관계로 발전하였다.
리스트의 딸, 코지마는 원래 지휘자 뷜로우와 결혼하였다.
뷜로우는 바그너에게 음악을 배웠던 제자이기도 하다. 그
런데 코지마는 바람둥이 바그너와 친해져 그의 아이까지 낳게 되고 5년 후엔 결혼도 하였다.
바그너도 장인인 리스트 못지않게 유뷰녀와의 관계 등 상당히 복잡한 여성 관계를 가지고 있다.
슈만 음악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역시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의 일방적인 40년
짝사랑이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정 소송까지 치른 끝에 슈만과 결혼한 클라라는 당대 최고의 여성
피아니스트였다.
결혼식 다음날 슈만은 일기장을 아내에게 선물로 사주며 서로 음악과 사랑을 나누었다. 두 사람이 스무살의 브람스 청년을 만난 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당시 클라라가 서른 넷, 슈만의 나이 마흔셋이었다.
슈만이 정신병을 알게 되자 브람스는 온 정성을 다해 클라라를 도왔고 슈만이 죽은 후 솔직한
사랑의 감정을 편지에 담아 전했다.
40여년을 애절하게 짝사랑했건만 끝내 브람스와 클라라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클라라 때문에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던 망부석같은 브람스이지만 한때 사랑했던 다른 여인도
있었다.
아가테라는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였는데 슈만이 죽은 후 클라라와의 묘한 감정이 싹틀 무렵,
아가테가 브람스에게 청혼을 하였다.
그런데 브람스는 이를 거절하였고 아가테는 그 후 20년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았다.
브람스가 작곡한 '아가테(Agathe) 6중주곡'에는 그녀에 대한 애절한 사랑의 흔적도 남아있다.
1악장 제일 마지막 부분이 "A-G-A-D-H-E (라-솔-라-레-시-미)"를 애절하게 두 번 부르며 끝을
맺는다.
차이코프스키와
9살 연상의 폰메크 부인과의 13년간 1200여 통의 연애편지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랑 이야기이다.
서로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차이코프스키를 도와주었던 부유한 미망인 폰메크는 가난한
차이코프스키가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물질적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두 사람의 우정은 점차 사랑으로 발전하였지만 이뤄지지는 못했다.
이 사랑이 맺어질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연애자였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