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로드리고는 <아랑후에스 협주곡>을 썼다. 이 곡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협주곡 중 하나가 됐다. 로드리고가 기타협주곡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친구인 에스파냐의 거장급 기타리스트 레히노 사인스 데 라 마사(1897-1982) 때문이다.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협주곡>은 사인스 데 라 마사의 기타 독주로 1940년 12월 바르셀로나에서 초연됐다. 오케스트라와 기타의 협연시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처음에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연주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청중과 비평가로부터 찬사가 쏟아졌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 남방 72km 정도에 있는 18세기 부르봉왕가의 여름궁전이다. 그 궁전은 로드리고가 좋아하는 시대의 한 상징이었다. '마하스(젊은 여인들)와 투우사, 그리고 중남미의 선율로 특징지을 수 있는', 나폴레옹 이전의 마지막 두 왕들이 살던 시대를 '아랑후에스'의 생명 속에 다시 불러들이고자 한 것이 이 곡의 의도다. <아랑후에스협주곡>이 지닌 최대 강점은 에스파냐라는 나라와 에스파냐의 민족유산을 음악으로 멋지게 그려냈다는데 있다. 에스파니아 민속악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타를 사용해 지중해 생활의 색깔, 분위기, 멜로디, 그리고 발랄함이 커다란 슬픔으로 돌변하는 역설을 용케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해설
<아랑후에스협주곡>은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트럼펫과 호른)를 위한 곡으로 음색이 다양하고 매우 아름답다.
제1악장 :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
소나타의 전통적인 형식을 갖춘 이 악장은 중부 에스파냐의 명랑한 구애의 민속춤 판당고를 연상시킨다. 제1악장은 기타가 잔잔한 저음을 배경으로 깔면서 시작된다. 첫 악절에서는 그 악장 전체를 흐르는 리듬을 제시한다. 6개의 8분음표가 3박 2개(이 악장의 기본 박자인 6/8박자)나 2박 3개(아래 두번째 마디에서 보이듯이 3/4박자)로 나뉜다.
강약은 변하지만 마디 길이는 변함없는 이 헤미올라는 당김음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는 에스파냐 민속음악과 유럽의 르네상스, 바로크시대 춤곡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기타는 목관악기의 조용한 연주와 함께 스타카토 오스티나토(연달아 음을 끊어서 연주하는 기법) 음형으로 진행한다. 이것이 끝나면 현악기가 도입패시지를 연주한다. 오보에와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대담한 주제가 잔잔한 음을 넘어 들어오다가 기타에 의해 변형된 뒤 목관악기와 발랄한 화음을 주고받는다. 이는 다시 플라멩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확대된 프리지안 카당스(E단조와 F#단조의 화음)로 들어갔다가, 바순의 저음과 더불어 기타가 이끄는 새로운 주제로 넘어간다.
지금까지의 주제는 강세를 띤 D장조로 들어갔으나, 이 새로운 주제는 훨씬 동떨어진 영역의 F장조와 Db장조를 거쳐 A단조에 이른다. 현악기의 판당고 리듬이 다시 등장함과 동시에 발전부가 같은조로 시작된다. 이에 따라 기타는 전보다 훨씬 빠른 경과구의 라스게아도로 연주된다. 소용돌이치는 듯한 하강음(목관악기와 고음의 현악기)이 재현부를 이끌어내고, 재현부는 제시부와 마찬가지로 기타가 D장조의 딸림화음을 화려하게 연주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코다는 대개 기타에 의해 처음 이끌려들어온, 앞의 스타카토 오스티나토 음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코다가 비록 발랄한 투티에 이르기는 하지만, 조용히 종지를 향해 나아간다. 이때 기타는 판당고 리듬을 짧게 연주한다.
제2악장 : 아다지오
작곡가의 아내인 카르미는 이를 가리켜 ‘허니문의 행복을 담은 사랑의 노래’라고 했으며, 로드리고 자신은 ‘기타와 잉글리시 호른이 나누는 애수의 대화’라고 칭했다. 잉글리시 호른의 애잔한 선율이 그리움과 우수로 가득찬 향수를 자아낸다. 프랑스어 가사를 붙여 나나 무스쿠리가 부른 '사랑의 아랑후에스 (Aranjuez Mon Amour)' 등이 유명하다.
Nicanor Zabaleta, Harp Spanish National Orchestra / 1974년 녹음 Rafael Frühbeck De Burgos, Conductor
현악기의 지속적인 저음부 위로 기타가 B단조의 으뜸화음을 되풀이하며 등장한다. 한 마디가 끝나면 잉글리시호른이 (아랑후에스협주곡)에서 가장 유명한 구슬픈 멜로디를 연주한다. 이 멜로디는 성모 마리아와 수많은 성인들을 기리는 조상행렬이 세비야거리에 물결치는 연례 종교행사인 사에타에서 연주되는 음이다. 일부 음이 꾸밈음으로 강조된 이 멜로디는 2개의 악절로 이루어져 있다. 조용한 현악연주를 바탕으로 기타가 2개의 악절을 반복하여 마치 칸토레의 노랫소리같이 화려하고 서정적인 음색을 가미한다. 그러면 이 멜로디에서 비롯된 짧은 악구는 현악기와 목관악기를 거쳐 E단조에 이른다.
기타가 이 새로운 조를 통해 새로운 악구로 돌입하면 바순이 이를 받아 연주한다. 이런 형태가 전과 동떨어진 G단조, C단조를 거치며 계속되는 동안 오보에가 원래 선율들을 함께 연주한다. 이때 전체 오케스트라가 갑자기 끼어들면서 E단조로 돌아선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기타가 독주로 즉시 첫 멜로디를 연주한다. 잠시 후 오보에와 현이 끼어들어 E단조를 A단조로 바꿔놓는다. 기타도 긴 떤꾸밈음과 빠른 경과음으로 정열적인 연주를 시작한다. 기타의 정열적인 연주가 서서히 잦아들면 목관악기가 단편적인 악구들을 번갈아가며 빠르게 연주한다. 다시 바순만이 흘로 남고 G단조가 넌지시 돌아온다. 놀랍게도 기타독주가 여러 주제들을 바탕으로 한 G#단조의 기나긴 종결부를 이어나가면서 다양한 분산화음과 그 밖의 다른 화음들을 선보인다.
절정을 이루는 트레몰란도(2개 이상의 음을 빠르게 교차시키는 주법) 화음이 오케스트라 전체를 부추겨 전혀 예기치 못했던 F#단조의 처음 멜로디로 단숨에 되돌아가게 한다. 이어 기타가 다시 등장해 제2악장을 평온한 종결부로 이끌며, 매우 여리게 연주되는 현악기들의 화음을 아래로 깔고 최고음역을 향해 치닫는다. B장조의 종결화음이 마치 저녁햇살처럼 다가오는듯 하다.
제3악장 : 알레그로 젠틸레
마지막 이 악장에는 궁정의 우아한 분위기가 흐른다. B장조로 시작되는 기타독주가 힘찬 2부 대위법으로 즉각 론도주제를 제시한다. 이어 2/4박자와 3/4박자의 마디들이 불규칙하게 번갈아 나오면서 세기와 박자를 변형시켜, 제1악장의 당김음 리듬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오케스트라가 이 주제를 신속히 재현하는데 이때는 D장조를 취한다.
제3악장의 나머지 부분은 4개의 삽입구로 나눌 수 있다. 첫 삽입구에서 기타는 론도주제를 아름다운 화음에 맞춰 연주하다가 조용히 또다른 론도를 제시한다. 이어 떨리는 스타카토가 연주되면서 C#단조로 조를 옮긴다. 이 부분에서 제2삽입구가 시작된다. 퉁기듯 연주되는 현악기의 낮은 음을 바탕으로 강렬 하고 꽉찬 느낌을 주는 기타화음에 목관악기 가 화답한다. 목관악기의 화답이 끝나면 기타가 점점 내려가는 분산화음으로 B단조의 새로운 주제를 연주한다. 플루트에 이어 기타의 빠른 음역이 론도의 재등장을 알린다. 바이올린은 퉁기듯 연주하며, 기타는 아르페지오로 연주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G장조다. 앞의 두 삽입구보다 긴 제3삽입구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또다른 악상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악상을 제대로 취하고 있는것은 기타밖에 없다. 퉁기듯 연주하는 현악기와 새의 울음소리 같은 목관악기의 음이 계속된다. 결국 기타는 론도 주제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이번에는 흐르는듯한 16분음표로 연주한다. 그러고는 거침없 이 제4삽입구로 연결된다. 이때 마치 나팔소리처럼 들리는 군가풍의 주제가 도입되면 오케스트라가 이를 재빨리 받아들여 진행한다. 마지막 삽입구는 기타의 빠른 분산화음과 바이올린의 트레몰란도로 절정에 이른다. 잠시 쉬고 나면 전체 오케스트라가 전속력으로 D 장조의 론도를 마지막으로 연주한다. 코다는 짧다. 고음의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옥타브도약, 아르페지오로 연주하는 으뜸화음에 이어 추락하는듯한 기타의 빠른 음이 들린다. 악장의 마지막은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하지만 미묘한 기타소리에는 어느 정도 어울리는 모습으로 끝난다.<한성대학 Classic Guitar Circle [HanEum]>
호아킨 로드리고 Joaquin Rodrigo (1901-1999, 스페인)
로드리고는 스페인의 발렌시아 지방에 위치한 사군토에서 태어났다.3세때 악성 디프테리아로 인해 실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정신과재능으로 오늘날 가장 이름 높은 스페인의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위치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 발렌시아 음악원에서 로페스 차바리에게 작곡과 피아노를 배웠는데, 이 당시인 1924년에 '후글라레스'를 발렌시아 오케스트라에 의해 무대에 올렸다.
1927년 파리 고등 사범학교로 옮긴 그는 폴 뒤카에게 음악을 배웠고 같은 스페인 출신의 작곡가인 팔랴의 음악에 감동을 받았다. 1933년 터키의 피아니스트인 빅토리아 카피와 결혼한 그는 스페인으로 일단 귀국했다가 1934년, 다시 파리에서 음악학 등을 공부하였고, 스페인이 내전에 시달리던 당시에 주로 독일에서 지냈다. 1939년에 귀국하여 마드리드에 정착한 그는 1940년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랑훼즈 협주곡'을 발표했다. 저음현의 지속적이고도 활발한 공명을 통해 아란훼즈 왕궁의 지적 정취를 독창적으로 들려준 이 곡으로 인해 로드리고의 명성은 급작스럽게 퍼져나갔다. 특히 제2악장의 주제 선율은 이후 파퓰러 음악이나 재즈를 비롯하여 각종 악기로 편곡 연주 되었다.
그의 음악세계는 파야처럼 스페인 민중 속으로 깊이 침투하는 것은 아니였다. 대신 그는 스페인의 색채를 신고전주의적인 양식으로 소화시켰다. 특히 협주곡에 있어 탁월한 면모를 보였는데 '기타 협주곡'아랑훼즈' 이외에 '어느 귀신사를 위한 환상곡',과 '4대의 기타를 위한 안달루시아' 협주곡이 유명하다. 스페인 저작권 협회에 따르면 그의 아랑훼즈 협주곡은 20세기에 가장 많이 편곡된 클래식 음악으로, 약 50여종의 편곡 음반이 발표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은 플라멩고 기타리스트 파코 데 루치아의 버전이였다.
기타 음악으로 가장 잘 알려졌지만 관현악곡 《어느 신사를 위한 환상곡 Fantasia para un Gentilhombre》《어린 시절을 위한 5개의 소품 Cinco piezas in fantiles》《음유시인 Juglares》《정원음악 Musica para un jardin》, 발레곡 《국왕의 춤 Pavan Real》, 오페레타 《이별의 소나타 Sonada de Adios》, 피아노곡 《아침 수탉의 전주곡Prelude au Coq Matinal》 등도 작곡했으 며, 협주곡에 《아랑후에스 협주곡》 외에 《세레나데협주곡 Harp Concierto Serenata》《여름협주곡:Concierto de Estio》《영웅협주곡 Concierto de Heroico》 등을 작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