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클래식)

[스크랩] 에릭사티 `짐노페디`

freeman1 2012. 2. 11. 13:36

Gymnopedies - The Magic Of Satie : Jean-Yves Thibaudet

에릭사티 짐노페디

Eric Satie, 1866-1925, 프랑스

Gymnopedies  No.1~ No.3

 

Jean-Yves Thibaudet, piano

     

The Magic Of Satie

사티의 피아노 작품들은 클래식이면서 컨템포러리 음악이다. 데카의 피아니스트, 프랑스 피아니스트 장 이브 티보데가 사티의 보석 같은 음악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레퍼토리는 완벽할 만큼 장 이브 티보데의 풍부한 음악적 이미지들은 풍부한 음악적 색감을 담은 그의 팔렛트에서 뿜어져 나와 음반에 담아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꿈꾸는 물고기 The Dreamy Fish''와 ''별난 미녀 La Belle Excentrique''에서 유명한 ''짐노페디 Gymnopedies''까지……..

특히 이 음반엔 사티 사후에 출판된 작품들로 아직까지 음반으로 발매 된 바 없었던 ''짐노페티 7번''과 ''별난 미녀''가 담겨져 있다.

 

 Gymnopedies    

사티의 전작품 중에서는 피아노 작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으며, 1886년부터 1926년까지 약 30곡 정도의 소품을 썼다. 알프레드 코르토는 이를 2개의 시기로 나누어서 고찰하고 있다.

제1기(1886-1895년): 사티가 그레고리오 성가, 중세기의 신비주의, 고딕 건축 등에 관심을 품고 있던 시기로 교회 의식에 대한 비밀스런 흥미거리나 한평생 계속된 안데르센 동화에 대한 동경 등이 생겨났던 시절이기도 하다. 불모로 끝난 파리 음악원에서의 면학에 이어지는 이 시기부터 사티의 행동에는 괴이함이 눈에 두드러지기 시작하였는데, 순간적인 기분으로 알라스의 보병대에 입대하기도 하였고, <장미 십자단>이란 밀교단체에 속하기도 했으며 끝내는 스스로 <영도자 예수의 대업 대도 교단>이라고 하는 가상적인 교단을 만들어 그 교조를 자칭하는 등 괴팍한 행동에 넘치는 청년 시절이었다. <3개의 사라방드>(1887), <3개의 짐노페디>(1888), <3개의 그노시엔느>(1890) 등 3으로 연유된 작품군을 발표한 것은 성 삼위일체의 비적(秘蹟)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고 해설하고 있다.

이중 <3개의 짐노페디>는 초기의 사티를 대표하는 가곡군으로 유명하다. 그에 앞서 <3개의 사라방드>가 샤브리에의 작품 등에도 이미 알려진 비해결 화음의 연속에 의한 어두운 음향을 가진 데에 비해서, 단음으로 연주되는 애조띤 선율선과 그것을 지배하는 섬세하고 선법적인 불협화음만으로 구성되는 <짐노페디>는 획기적인 작풍과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짐노페디 Gymnopédie>라는 말은 고대 그리이스에서 나체의 남자가 춤추던 의식 무도를 가리키는 ''Gymnopaedic''에서 사티가 만든 말이다.

     

에릭사티 짐노페디 2번

Eric Satie, 1866-1925, 프랑스

Gymnopedie No.2 - Lent et triste

 

Jean-Yves Thibaudet, piano

     

작품의 구성

3개의 짐노페디는 초기의 사티를 대표하는 가곡 군으로 유명하다. 그에 앞서〈3개의 사라방드〉가 샤브리에의 작품 등에도 이미 알려진 비해결 화음의 연속에 의한 어두운 음향을 가진 데에 비해서, 단음으로 연주되는 애조 띤 선율 선과 그것을 지배하는 섬세하고 선법적인 불협화음만으로 구성되는 〈짐노페디〉는 획기적인 작풍과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짐노페디 Gymnop die〉라는 말은 고대 그리이스에서 나체의 남자가 춤추던 의식 무도를 가리키는 ''Gymnopaedic''에서 사티가 만든 말이다.

''3개의 짐노페디'' 는 청정지대에서 길어 올린 맑은 샘물처럼 세속의 때가 묻지 않고 투명하다. 현란한 기교와 숭고하고 장엄한 분위기만을 음악의 미덕으로 삼던 시류에 반기를 든 그의 음악은 한마디로 솔직담백하다. 멜랑콜릭한 부분이나 밝고 쾌활한 악절이 모두 그렇다.

짐노페디는 고대 스파르타의 연중 행사의 하나인 제전으로 나체로 젊은이들이 합창과 군무로써 신을 찬양하는 것을 말한다. 샤티는 이 이색적인 소재를 프로벨의 소설 <사란보>의 일부에서 착상하여 1888년에 3곡의 조곡으로 작곡하였다. 그후 드뷔시가 이 조곡의 1번과 3번을 관현악으로 편곡하여 현재 연주되고 있는데, 드뷔시는 3번을 1번으로 하고 있다. 관현악 반주의 하프 연주도 감미롭지만, 역시 관현악 반주의 바이올린 연주도 무척이나 감미롭다. 여기서 바이올린은 약음기_울림을 작게 하는 장치를 끼고 연주하고 있다.

     

에릭사티 짐노페디 3번

Eric Satie, 1866-1925, 프랑스

Gymnopedie No.3 - Lent et grave

 

Jean-Yves Thibaudet, piano

     

1번 느리고 비통하게 Lent et douloureux 3/4박자.

왼손이 낮은 G음, D음을 시이소식으로 반복하는 4마디로 도입한 후, 단순한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전30마디로 구성되는 악절이 함축적인 언어로 되풀이되는 모두 78마디의 소품이지만, 이들을 형성하는 짧은 프레이즈의 길이가 통일되지 않았다는 점과 비기능적인 화성이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불안감을 자아내어 진부함을 피하고 있다.

1888년에 작곡된 이 곡은 플로베르의 소설 < 살랑보 > 의 일부에서 착상된 것입니다. 3개의 짐노페디 중, 반복되는 리듬이지만 이국적인 선율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2번 느리고 슬프게 Lent et triste 3/4박자.

이 곡도 울적한 4마디의 G음-D음의 시이소, 페달의 도입구를 가졌고 선율이 단순한 것도 앞의 악장과 같으나, 악구 사이에 모두 4회가 삽입되는 완전히 표정을 잃은 낮은 G-D음의 2마디는 앞을 연결하는 것도 아니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며 오직 간격을 메꾸기 위해서만 있는 것 같은 음향을 갖는다.

 

제3번 느리고 장중하게 Lent et grave 3/4박자.

또다시 시이소 페달(이번에는 낮은 A-D)에 의한 도입으로 단순한 선율이 흘러 나오는 곡. 전60마디. 화성의 해결감의 결여가 악구의 길이의 불균등함에 부자연감을 주지 않는 이유겠지만, 화성의 전횡으로부터 선율의 해방을 시도하는 작은 실험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는 점에 있어서 역사적으로도 뜻이 있는 작품 군이다.

     

Satie - New Ages?

 

뉴에이지의 시초가 어떤 누구 하나에 의해서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명상적 특성, 간결미, 맑고 깨끗한 화성, 절제된 멜로디, 신비스러움 등의 모습이 바로 1866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에릭사티(Eric Satie)의 음악에서 잘 나타납니다. 당시의 음악매니아 및 작곡가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음악으로 치부되었던 작품들이 지금의 뉴에이지를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약 150여년 전에 말입니다.

 

뉴에이지 음악은 1990년대의 중/후반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다원론적 경향에 묘하게 일치된 점이 많았습니다. 사실 그 음악은 요한 파헬벳의 ''카논''이나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등에서도 일찌기 그 조짐이 보였었지만 대중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못했다가 최근에서야 몇몇 아티스트들에 의해 확산되기 시작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재 대중들이 수용할 수 있는 변화기 있었기 때문이죠.

 

     

에릭 사티 (Eric Satie, 1866-1925, 프랑스)

사티는 기존 음악계가 쌓아놓은 신조나 미학을 무시하고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간 ''세기말의 반항아''였다. 그는 낭만주의나 인상주의에 반대하여 감정의 표출을 절제한 채 단순하면서도 기발한 음악들을 써냈다. 괴팍한 아이디어와 신랄한 유머, 그리고 신비주의와 순수에 대한 이념이 그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만들어냈다. 파리음악원을 마친 후 1884년부터 피아노곡을 중심으로 작곡계에 뛰어든 그는 <오지브>(1886) <사라방드>(1887) <짐노페디>(1888) 등을 통해 단선 성가풍의 투명한 음악들을 선보였다.

1890년에 몽마르트로 이사간 그는 기괴한 옷을 입고 나이트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 시기부터 드뷔시와 친교를 가졌으며, 또한 신비주의적 비밀결사인 <장미십자교단>의 전속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장미십자교단의 종소리>와 같은 작품을 써냈다. 그는 <지휘자 예수의 예술 메트로폴리탄 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유일한 교인이 된 적도 있다. 1898년 파리를 떠나 아르쾨유로 간 그는 조그만 방에 기거하면서 죽는 날까지 살았다.

항상 아마추어로 취급받는데 대해 불만을 느낀 사티는 1905년엔 스콜라 칸토룸에 입학하여 알베르트 루셀에게 다시 음악을 배웠으나 그의 음악은 과대망상증, 기벽증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1917년에 콕토의 대본과 피카소의 무대장치에 의한 발레 <파라드>의 음악을 맡으면서 그의 가치는 반전되었다. 시대를 초월한 대담한 수법과 혁신적인 사티의 사상은 미래파의 출현을 예고해주었고, 초현실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Gymnopedie style

그리이스의 옛 dance에 유래. Eric Satie가 많이 사용하였다. 연주할때 첫째 박자에는 bass음을 둘째박자 에는 sustained chord를 사용하여 melody를 치는 style.

사티 작품의 독창적인 지시어

사티는 그의 지시어들을 "이것은 연주자와 나 사이의 암호이다."라고 했다한다.  그는 때때로 비유적인 의미를 가지고 본질적 의미를 표현해 보기도 하고, 어떤 감각 영역에 있어서는 당연한 어휘를 다른 감각 영역으로 바꾸어 놓고 사용하기도 했다.  그들의 예는 다음과 같다.

Tres luisant ; 매우 광택나게

Questionnez ; 물음을 던지듯이

pas a pas ; 한걸음 한걸음

Postulez en vousmen ; 자기 자신에게 의뢰하는 느낌으로

Du bout de la pense ; 사고의 저편에서

Sur la langue ; 혀위에서

 

전곡 이어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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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ymnop?die  I. (03:02)

1번 Lent et douloureux(느리고 비통하게) 



 

  Gymnop?die  II.  (02:21)

2번 Lent et triste(느리고 슬픈)





  Gymnop?die  III. (02;20) 

3번 Lent et grave(느리고 무거운)

 

                         

출처 : 예쁜감자
글쓴이 : 키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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