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가 나를 이끈다 / 이 기철 님의 시 ㅡ
이 옷을 만들 때 그는 따뜻한 숨을 쉬었을 것이다
이 책상을 만들 때 공장 위로 몇 송이의 구름이 지나갔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은 나에겐 미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입거나 사용한다
이 양복을 만들며 그는 누군가가 이것을 입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책을 만들 때 그는 누군가가 이 책을 읽을 거라고,
이 시를 쓸 때 그는 누군가가 이 구절을 읽으며
기뻐하거나 슬퍼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지는 기억의 창고에 낙엽처럼 쌓인다
미지는 닿을 수 없는 축제, 그리움의 향연이다
나는 날아가는 나비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나는 들쥐가 잠들 들판의 집을 알지 못한다
지친 잠자리가 어느 바지랑대에 앉을지를 알지 못한다
저 개미가 불어난 물을 건너 어느 굴 속으로 갈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사유하는 그대여
그대가 밟고 온 어제는 등 뒤로 사라지고 없다
그대는 아직 내일을 만나지 못했다
그대는 끊임없이 회의하고 반문하고 부정하고 숙고한다
나는 저 항아리의 흙이었던 때의 빛깔을 모른다
저 비단 집에 들어있는 곤충의 애벌레 시절을 모른다
이 책상이 닥나무였을 때의 떡잎을 나는 모른다
내 열 살 때의 저녁놀이 숨은 곳을
발을 간질이고 흘러간 내 열 두살 적 개울물이 다다른 곳
소년 시절에 듣던 겁 많은 여우의 울음이 묻힌 곳을
누가 마침내 저 저녁놀을 잘라 제 옷을 만들 수 있는지를 나는 모른다
모든 것은 미지
그 만질 수 없는 세계에 닿으려고 나는 고뇌의 길을 간다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창가에 내리는 비 (0) | 2008.04.23 |
---|---|
[스크랩] 만날 사람은..!! .. (0) | 2008.04.23 |
[스크랩] 당신이었으면 합니다 (0) | 2008.04.21 |
[스크랩] 인연은 우연과는 다릅니다 ~~ (0) | 2008.04.20 |
[스크랩] "누구에게든 마지막 말을 하지마라" (0) | 2008.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