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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음의 그릇에 담긴 시 ㅡ

freeman1 2008. 4. 22. 17:49

 

                      미지가 나를 이끈다    /        이 기철 님의 시 ㅡ

 

             이 옷을 만들 때 그는 따뜻한 숨을 쉬었을 것이다

             이 책상을 만들 때 공장 위로 몇 송이의 구름이 지나갔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은 나에겐 미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입거나 사용한다

 

             이 양복을 만들며 그는 누군가가 이것을 입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책을 만들 때 그는 누군가가 이 책을 읽을 거라고,

             이 시를 쓸 때 그는 누군가가 이 구절을 읽으며

             기뻐하거나 슬퍼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지는 기억의 창고에 낙엽처럼 쌓인다

             미지는 닿을 수 없는 축제, 그리움의 향연이다

 

             나는 날아가는 나비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나는 들쥐가 잠들 들판의 집을 알지 못한다

 

             지친 잠자리가 어느 바지랑대에 앉을지를 알지 못한다

             저 개미가 불어난 물을 건너 어느 굴 속으로 갈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사유하는 그대여

             그대가 밟고 온 어제는 등 뒤로 사라지고 없다

             그대는 아직 내일을 만나지 못했다

             그대는 끊임없이 회의하고 반문하고 부정하고 숙고한다

 

             나는 저 항아리의 흙이었던 때의 빛깔을 모른다

             저 비단 집에 들어있는 곤충의 애벌레 시절을 모른다

             이 책상이 닥나무였을 때의 떡잎을 나는 모른다

             내 열 살 때의 저녁놀이 숨은 곳을

             발을 간질이고 흘러간 내 열 두살 적 개울물이 다다른 곳

             소년 시절에 듣던 겁 많은 여우의 울음이 묻힌 곳을

             누가 마침내 저 저녁놀을 잘라 제 옷을 만들 수 있는지를 나는 모른다

 

             모든 것은 미지

             그 만질 수 없는 세계에 닿으려고 나는 고뇌의 길을 간다

 

 

 

 

 


출처 : 마음의 그릇에 담긴 시 ㅡ
글쓴이 : 꾸루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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